• (여행칼럼) 싸목싸목 지구별 여행-해남 미황사
  • 무수한 바위 하나하나에 서린 세월, 눈시울 붉어져
  • 30년 만에 다시 찾은 해남 미황사.

    응진당 뜰 앞에 서니 푸르렀던 젊은 날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겨우 역사와 문화에 눈 떠가던 시절.

    천둥벌거숭이를 인문학으로 이끌어 주셨던 스승님들은 고인이 되셨지만, 미황사는 여전히 달마산 아래 동백나무 숲을 품고 서 있다.

    달마산의 장엄한 기운, 천년고찰의 고적함 가운데서 숙연한 마음의 내 자신과 조우하는 오붓한 시간이다.

    이미 마음은 미황사를 처음 찾았던 푸르른 청춘시절, 삼십 대 중간 언저리를 헤매이고 있다. 

    해남 미황사는 전남 해남군 송지면, 현산면, 북평면에 걸쳐 있는 달마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대흥사의 말사로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절이며 749년 의조(義照)가 창건했다.

    사적비에 따르면 749년 8월 한 척의 석선(石船)이 사자포에 나타났는데 배에는불교 경전과 불상과 탱화등이 있었다고 한다.

    다음날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 일어난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미황사가 있는 달마산의 능선은 바위가 공룡의 등 줄기처럼 울퉁불퉁 솟아있다.

    능선을 따라 오르면 완도와 진도의 다도해가 시원스럽게 조망되고, 날씨가 좋은 날은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빼어난 절경을 지니고 있어 달마산을 예로부터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렀다. 

    요즈음은 '달마고도' 트레킹이 인기다.

    달마고도는 미황사 주지인 금강스님이 기획해 조성한 길이다.

    길의 명칭 또한 금강스님이 명명했다고 한다.

    금강스님은 미황사와 도솔암을 오가며 국토의 최남단 땅 끝과 연결되는 달마산 중턱 해발고도 220m~380m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12암자의 길을 복원했다.

    그리고 달마산의 생태, 역사, 문화자원과 빼어난 경관을 소재로 남도의 대표적인 명품 둘레길을 기획했다.

    달마고도는 포클레인 등 중장비 없이 삽과 곡괭이, 지게, 망치 만을 사용해 순수한 인력 만으로 시공했다.

    달마고도(達磨古道)의 명칭은 달마대사(達磨大師)의 달마(達磨)와 티베트의 유명한 천년고도, 차마고도(茶馬古道)[Tea-Road]에서 따왔다.

    고개를 뒤로 젖혀 달마고도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무수한 바위 하나하나에 서린 세월을 가늠해 보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인생의 황혼에서 삶의 구비구비 쌓여 온 사연과 그 속에 내재 된 추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딱히 슬픈 기억도 없는데도 쓸쓸해 진다.

    응진당 뜰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 

    그래서 미황사에 대한 추억에는 늘 바다가 떠올랐다.

    하지만 오늘은 잔뜩 흐린날씨라 뿌연 기류 때문에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저기 쯤 바다겠지' 눈 짐작을 해 본다.

    스님 따라 다실로 들어왔다.

    창호지를 통과 한 겨울 햇살이 먼저 들어와 자리 잡고 있다.

    명온한 마음으로 차를 마신다.

    옅은 들깨 향 같은 차 향이 스르륵 마음을 녹인다.

    누군가의 고운 손길을 통해 내 찻잔까지 오게 된 어린 찻잎을 생각해 본다.

    가시처럼 마른 찻잎이 따뜻한 물을 만나 부드럽게 온 몸을 풀고 그 생명이 살아나서 본연의 맛 보다 더 그윽한 한잔의 차로 환생하듯이, 

    스스로 쓸쓸하고 울적했던 마음이 문학도 였던 청춘 시절로 돌아가 활짝 피어 나는 듯 하다.

    어느 새 마음은 온통 푸른바다 파도처럼 찰랑거린다.
  • 글쓴날 : [21-01-1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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