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렸다.
첫 눈치고는 믿을수 없을 만큼 펑펑.
함박눈이 펄펄 내려서 모든 걸 새 하얗게 덮었다.
눈 내리는 대 숲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차가운 대 숲의 바람소리가 듣고 싶어서 소쇄원에 왔다.
소쇄원, 맑고 시원하고 깨끗하다는 뜻을 품고 있다는 데
깊은 겨울이라 그런 지 더욱 청정한 기운이 소쇄원 뜰에 가득하다.
높은 산 계곡의 얼음 장 밑을 흐르는 물소리 처럼 차가운 느낌이 정신을 번쩍들게 한다.
겨울에 눈이 제일 먼저 녹는다는 애양단 앞으로 가 본다.
양지 바른 그 곳엔 겨울 볕이 양명하다.
오곡문 담장 밑으로 흘러 들어
온 물 줄기가 너른 바위를 만나서 다섯번을 휘돌아 나가는 광풍각 앞 냇물을 따라서 아래로 내려 간다.
고즈넉 하기 그지 없는 텅 빈 소쇄원 마당에는 칼 바람과 양명한 햇살이 투명하게
서로를 어루며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소쇄처사양공지려,
송시열의 글씨다.
가문과 학식과 미래가 총망한 사대부들이 골짜기에 누정을 짓고 정원을 꾸미고 그 속에서 은둔하며 문학을 꽃 피우며
스스로를 맑고 깨끗하고 시원한 사람이라 여겼다니 그 심정을 헤아려 보면서 천천히 제월당 앞마당을 걸어 본다.
제월당은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란 의미다.
달 밤의 소쇄원 느낌이 궁금해 진다.
올 가을 보름달 뜨면 다시 오련다 마음 먹었다.
500년의 역사와 사연을 품은 소쇄원은 원형의 모습을 간직한 채 오래전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이곳에 잠들어 있는 선조의 짙은 영혼이 깊이 간직된 세월의 흔적인 냥 곳곳이 예스럽다.
양산보(1503~1557)가 조성한 소쇄원은 양산보의 호인 소쇄옹에서 비롯됐으며 광풍각은 비온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사랑방이다.
대숲을 건너 오는 바람이
흰눈에 세신을 하고 불어 오는 듯 칼칼하게 매섭다.
칼바람 따라 이리저리
흩날리는 겨울 햇살도 봄철의 나비인 듯 아른 거린다.
선비의 풍류가 별건가...
영하의 날씨에 작은 나뭇 잎 한 잎 팽그르 돌며 떨어지는 순간을 내 모습인 냥 애처로이 바라 보는 이도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애잔한 풍류객이 아닐까 한다.
햇살도 맑고 바람도 시원했으나
어쩐지 나는 쓸쓸했다.
바람소리에 넋을 빼앗긴 내 모습을 누군 가에게 들킨 듯 당황하여 재 빨리 정신을 수습했다.
갑자기 겨울 냉기가 온 몸을 움추러 들게 만들었다.
턱을 덜덜 떨며 자동차를 향해 뛰었다.
호되게 신년 시무식을 치른 기분에 귀가 떨어져 나갈 듯 꽁꽁언 상태로 크게 웃었다.
신축년 새해를 격하게 반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