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칼럼) '싸목싸목 지구별 여행-광주광역시 포충사'
  • 인경숙/여행작가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포충사에 왔다.

    포충사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두 가지 사연이 있는데,

    하나는 처음 광주광역시에 발을 딛게 된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부천에 있던 아파트를 팔아서 전 가족이 광주로 이사를 오게 됐었다.

    각별히 친하게 지내는 지인께서 포충사 인근 마을에 밭이 딸린 농가주택을 매입하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마당 넓은 전원 주택인 줄 알고 신나서 달려 갔는데 아뿔사 그냥 허름한 시골집. 그 자체로 기분이 엄청 상했다.

    어떻게 이런 집에서 어린 아이와 살라는 거지 하는 생각에 단칼에 거절해 버리고  봉선동에 신축한 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말았다.


    그 때 그집을 샀더라면 하면서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나주를 갈 때 마다 그 생각이 떠 오르면서 속이 쓰린 사연을 포충사에 와서 또 아쉬워 한다.




    포충사에 대한  또 다른 아쉬움이 큰 사연이 있다.

    몇년 전부터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을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오늘  이곳 포충사에 모셔진

    제봉 고경명의 장손녀를 주인공으로 그녀의 일대기를 장편소설로 재조명 하려 했던 계획이다.

    그녀의 별칭은 의모당 고씨 부인이다.


    의모당 고씨 부인은 할아버지가 의병장 제봉 고경명이고, 아버지가 복수 의병장 고종후이다.

    의모당은 제봉 고경명의 장손녀로 임진왜란 1년 전 양산축과 결혼을 했다.

    고씨 부인의 시할아버지는 호남의 정신을 대표하는

    학포 양팽손이고, 시부는 의병의 선각자 송천 양응정이며

    남편은 친정 할아버지 고경명의 수제자이며,

    율곡의 제자로 촉망 받는 양산축이다.

    자료 준비 만 하다가 불발에 그친 가슴 속 아쉬움을 오늘 에야 털어낸다.

    ​

    서론이 길었지만,

    이제부터 포충사를 살펴 보기로 한다.

    포충사는 1974년 5월 22일 광주광역시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다.

    포충사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호남지방에서 최초로 의병 7,000여 명을 모집하여 왜군과 싸우다가 1593년 8월의 금산싸움에서 전사한 고경명(高敬命)과 그의 두 아들, 종후(從厚)·인후(因厚)의 3부자와 유팽로(柳彭老)·안영(安瑛) 등 5명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제봉 고경명 의병장의 집안은 왜적에 맞서 싸우다 9명이 순국하였다.

    고경명 장군의 집안에서만 임진왜란 때 남녀 7명이 순절했고, 노비 2명도 순절하여 총 9명이 순국하였다고 전해 진다.

    ​슬프고도 장엄한 한 가족의 역사이다.

    이 처럼 한 명문 가문의 일가족이

    임진왜란에 몸바쳐 희생된 고귀한 역사 앞에 엄숙히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한다.




    도심에서 벗어난 한적한 곳에 위치한 표충사는 우리 모두에게 애국심이란 무엇인 가 말없이 교훈을

    전해 주는 뜻 깊은 장소이다.

    ​봄.여름.가을.겨울.사계절이 아름다운 이곳은 자녀를 동반한 가족나들이로 제격이다.

    넓은 주차장과 무료 입장,그리고 동서남북 어디서나 사진을 찍으면 예술이 되는 광주여행의 명소이다.

    선조들의 높은 뜻도 기리고 자연 풍광이 좋은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하루를 즐겨보길  바란다.

    포충사 경내를 한바퀴 돌아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된다.

    꼭 한번 다녀 가시길 강추한다.



  • 글쓴날 : [20-11-23 11:10]
    • 데일리호남 기자[truth11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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