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주 명월의 가을은
추수의 계절이자
월동준비에 이리저리
분주한 나날들
주렁주렁 구기자 열매가
마치 루비보석 마냥
유난히도 해 붉은 빛을 띄는게
秋男 학시니의 식어가는 가슴을
강렬히 리셋시키는 듯
불끈먹먹
날카로운 가시로
인간의 접근을 경계해 보지만
구순어르신 겨울 보양 명분에
속절없이 잘려지는 가시오갈피나무도 억울함을 억누르고
까만 열매와 가시돋힌 가지를
보시(布施)하는 심정으로
욕심보들에게 순순히 양보
"내년에 다시 새싹 튀우고
꽃피워 열매 맺으면 되지 뭘"
농장 이것저것 하루죙일
꼼지락 거리다가
망아지들 저녁사료 챙기고
어둑한 어스럼이
멀리 갈치배 불야성에 교차하는
태양농장엔
줄지어 선 워싱토니아 야자수들의
편안한 풍경이
보람과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밀레의 '만종'을 연상케 하는
늦가을 어느 초저녁
짧은 우리 네 인생에서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귀하디 귀한 오늘 하루가
회색 빛 귀밑터럭을
살랑살랑 간지럽히고
조롱한다
2/
오늘 지금 이 순간
보고 있는 꽃이나 풍경은 꼬박 1년을 기다려야만
다시 볼 수 있는
귀한 모습들이 아닌가
자세히 한번 더 들여다 본다
어찌 하나하나가 이쁘고 소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물며 평소 알고 있는 분들
어쩌면 다시는 못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어찌 흔한 인연이리오
그리운 얼굴들을 찬찬히
기분 좋은 기억과 함께
더듬 더듬 떠올려 보고
핸폰을 만지작 거린다
ㅡ201116. 제주 明月里民 학시니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