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물 소리가 들린다.
가벼워진 발걸음을 재촉하며 바위들을 징검다리 삼아 폴짝폴짝 뛰어 건넌다.
흐르는 물은 많지 않으나 바위 틈을 휘감아 도는 소리는 제법 크게 들린다.
계곡을 살펴보니 지난 여름 폭우에 난 생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굵은 나무 등걸이 바위에 걸쳐진 채 누워 있고 계곡 가장자리는 할퀴어 진 상처가 깊다.
지금은 듣기 좋은 물소리를 건너 풍암정에 다가왔지만, 폭풍우가 덥쳤을 그 때는 아마도 우렁찬 호통과도 같은 물소리가 천둥치듯 흘렀겠지...
평화로운 계곡을 바라보며 코로나로 어지러운 세상을 잠시 잊어 본다.
드문드문 보이는 단풍들이 그 빛을 끝내면 풍암정 계곡은 겨울을 맞이할테고, 산중에 눈이 쌓이면 깊은 계곡에는 바람소리가 물 소리를 잠재울 것이다.
자연의 변화에 따라 우리의 마음도 변할테지만, 오랜 세월 계곡에 묻혀서 변함 없이 역사를 간직해 온 풍암정을 고즈넉히 바라 본다.
흔히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없다 라고 비유하지만, 이곳 풍암정은 진심으로 물 좋고 정자 좋고 산 좋고 바람까지 좋은 곳으로 꼽힐만 하다.
풍암정(楓岩亭)은 광주광역시 북구 풍암제길 117. 금곡마을 위 원효계곡 하류에 있다.
이 정자는 조선조 인조 시대에 풍암(楓巖) 김덕보(金德普 : 1571~1621년)가 이전에 있던 정자를 중수한 것으로, 이 근처 다른 정자들이 마을 근처에 있는 것에 비해, 계류를 따라 한참 들어온 곳에 있어 암자처럼 호젓한 분위기를 풍긴다.
풍암 김덕보는 임진왜란 때 큰형인 김덕홍(金德弘)이 금산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제봉 고경명과 전사하고, 작은 형 김덕령(金德齡)마저 누명을 쓰고 옥사하자 세상 일에 대한 관심을 끊고 이곳 무등산의 수려한 원효계곡을 찾아 터를 잡고 도학과 경륜을 쌓으며 은둔생활을 하였다.
정자에는 풍암정사(楓岩精舍)라는 현판이 하나 더 걸려 있고, 정홍명이 쓴 [풍암정기] 그리고 임억령, 고경명, 안방준, 정홍명, 풍암 등의 시를 새긴 판각이 걸려 있다.
광주문화재 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으며 지금은 풍암의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
풍암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졌다.
정자 앞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과 거대한 바위, 계곡 쪽으로 지붕을 덮은 듯 기울어져 자란 우람한 소나무, 그 사이에 자그마한 정자가 꼭 그림에 그린 듯하다.
[풍암정기]에는 바위 주변에 단풍나무 백여 그루가 있어서 "가을이면 서리 맞은 고운 단풍이 물 위를 비추어 물빛이 단풍빛이고 단풍빛이 물빛"이었다고 적혀 있다.
풍암정이라는 이름은 거기서 유래한 듯 한데, 풍암은 이 정자를 지은 김덕보의 호이기도 하다.
어느 때 누가 쓴 것인지, 정자 앞의 커다란 바위 모서리에는 풍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숲과 하염없이 흘러만 가는 계곡물 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채 풍암정 마루에 앉아 있다.
임난으로 두 형을 잃고 비통해 했을 김덕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 덕분에 여기에 앉아서 자연을 감상할 수 있음이 고마울 따름이다.
광주에 살면서 이곳에 와보지 못한 사람은 어쨌든 시간을 내서 꼭 와보기를 권한다.
무등산에 산재한 누정이야 어느 곳 하나 빼 놓을 곳 없이 수려하지만,
이름 난 소쇄원,환벽당,식영정 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천년을 흘러 내리는 계곡물과 집채 만한 바위가 놓여 있는 풍암정 마당에 서서 우람한 소나무 우러러 하늘을 보고 앞산을 보라.
세월의 무상함과 어지러운 세상을 잊고자 운둔했던 김덕보의 먹먹한 가슴이 내마음으로 다가 올 것이다.
누구든 마음이 어지러운 자는 이곳으로 오시라.
마음에 평안이 깃들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