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속절없이 졌다
태양농장 식구가 줄었다
언제부터인 지 내 프샤에 등장하는
열두살 배기 '태양' 60kg 선 키 1.6m
그레이트 피레니즈 수컷
1박 2일 프로에 출연했던
'상근이'와 닮은 꼴
십 수년 전 지인으로부터
공짜는 명(命)이 짧다고
백일(百日)배기 걍쥐를 오천원 주고
입양 받은 복댕이
너의 보드라운 흰 털을
내 얼굴에 부비면서
나도 몰래 열애에 빠졌다
언젠가 농원 가출로
하루 종일 애간장을 녹이다 되 돌아와
빙긋히 미소지며 꼬리치던 개 괄량이
하도 우렁찬 짖음에
맹견과 낯선이 간담을 써늘케 했던
백수지왕 백사자 모습은
움직이는 최첨단 CCTV
초여름 개털 옷 삭발 노동에
울 부부 이틀 동안 씨름해야
덕분에 민 몸둥아리 깔깔깔
유난히도 큰 한주먹 코
너의 눈동자는 천진난만
발자국은 호랭이 만큼 컸던
발가락이 여섯개 왕발
그레이트 킹독 순종
애교는 살살 넘쳐 벌러둥
꼬리치기의 명수
반가워 덮치면 북극 곰을 연상케 했던 상냥 발랄한 순진이
이제는 빈 목줄에
반쯤 먹다 남은 사료와
추억의 스냅 사진들
태양이 묻힌 수목 매장터엔
뷰티크 야자수 씨앗들이 줄지어
덧없는 견생을 아쉬워 하는
학시니의 어깨를 토닥거린다
태양농원의 올 가을은
유별나게 을씨년 스럽다
학시니 프샤에서 금방 뛰어나온
태양이가 덥썩 안긴다
ㅡ201016. 제주 明月里民 학시니 생각
(글쓴 이/김학신-순천 출신으로 서울시립대를 졸업했다. 한국마사회 기획조정실장, 서울본부장, 렛츠런 재단 사무총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현재 제주시 한림읍 태양농장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