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칼럼) '싸목싸목 지구별 여행-광주공원'
  • 인경숙/여행작가
  • 추석 연휴 끝 날,

    가랑비 같은 가을 비가 내린다.

    우산을 들고 광주공원에 나왔다.

    광주공원 표지석 옆에 일제 식민통치 잔재물인 광주신사 계단임을 알리는 글씨가 보인다.

    날씨 만큼 무거운 걸음으로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가을 비가 소리없이 내리는 흐린 날씨 탓에 희뿌연한 하늘 아래 현충탑이 높게 보인다.

    공원이건만 아무도 없다.

    얼마 전 80대 중반의 노신사로 부터 광주공원에 대한 추억담을 들었다.

    노신사의 청년시절 이야기 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부인과의 데이트에 관한 내용으로 호기심이 생겼다.

    당시 청춘 남녀는 전남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어느 늦여름 포도 한 송이를 들고 광주공원 계단을 오르며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면서 이긴 사람이 포도 한 알씩 따 먹었다는 이야기었다.

    내 호기심과는 다르게 밋밋한 이야기였지만 회상하는 그분의 표정은 마치 20대 청년인냥  들떠 보였다.

    그분이 덧붙이기를 당시에는 주로 공원에서 데이트를 했다고...

    그리고 누구든지 광주를 방문하면 광주공원 구경하는 걸 최고로 쳤다고 했다.

    박물관과 동물원이 있어서 광주시민들이  많이 찾던 명소였다고 당시의 광주공원을 말해 주었다.

    오늘 내 발걸음이 이곳으로 향했던 이유는 노신사로부터 생긴 광주공원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차로 이동할 때마다 별 생각 없이 휙 지나버린 곳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아련한 추억의 장소이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민족의 굴곡진  역사의 현장인 이곳을 둘러 보고 싶었다.

    평소 포장마차가 즐비했던 광주공원 입구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모두 사라지고 인적이 끊겨 쓸쓸함만이 내려 앉아 있다.

    공원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넓은 잔디밭 위에 한가로이 휴식을 즐기는 가족들, 명랑하게 뛰어 노는 어린이, 햇볕 좋은 벤치에 앉아서 대화하는 이웃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름다운 꽃들과 지저귀는 새와 팔랑대는 나비 등등.

    오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내 머릿속 공원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최근 시민단체와 언론사 그리고 유관기관이 함께 열었던 '광주공원 광합성 프로젝트' 가 떠오른다.


    늦은 감이 있지만 매우 바람직한 움직임으로 힘껏 응원한다.

    관련 보도 내용을 생각하며 편의 상 붙여진 명칭인 제1광장에서 제2광장까지 계단을 올랐다.

    아직 가을 단풍이 들지는 않았으나 추색이 감도는 우람한 느티나무가 광장을 둘러 싸고 있다.

    축축히 젖은 아름들이 느티나무 표면을 쓰다듬어 본다.

    시대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 낸 듬직한 모습이다.

    제1광장이나 제2광장은 현재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공원을 걷는 사람은 없는데도 주차장은 만원이다.

    대체 차주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일까.

    필요 없는 생각을 하면서 옛 시민회관 앞을 지나  4.19 기념 탑에서 묵념한다

    언제나 밝은 미소 흰머리 소년같은 김기일 4.19문화원 원장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일동 묵념.

    다음에 원장님을 모시고 4.19기념 역사 관람을 주제로 하루여행을 기획해 봐야겠다.

    제3광장으로 올라 간다.


    현충탑 앞이다.

    다시 한번 묵념.

    6.25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숨진 영령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현충탑이다.

    당시의 전투 상황이 기록된 내용을 꼼꼼히 정독했다.

    현충탑을 둘러 오른쪽으로 걸어 나오면 위패 봉안소가 있다.

    이 곳에서도 묵념으로 호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을 마음에 새겼다.

    광장 앞을 묵념하는 마음으로 걸어서 성거사지 5층 석탑 (보물 제 109호 )앞에 섰다.

    예전에는 이곳 지명이 구동이었다고 한다.

    한자로 거북이 구자를 썼는데 언덕의 생김 모양이 거북이 형태여서 붙여진 지명이다.

    거북이 목덜미에 해당하는 곳에 탑이 있다.

    석탑은 오랜세월의 흔적을 품고 고색창연하지만 훤칠하고 준수한 젊은이 처럼 청신하다.

    참 아름답다.

    거북이 목위에 세워진 석탑.거북이를 영원히 이 자리에 매어두기 위해 세워졌을 텐데 그 목적은 달성 된듯 싶다.

    석탑을 돌아 만난 심사 신동욱 선생 항일사적비.

    심사 선생은 유학자로 일제 강점기 의병 활동과 항일 독립 운동에 헌신하신 분이다.

    사적비에는 선생의 좌우명 불기심(不欺心)이 함께 새겨져있다.

    그 뜻은 나라 잃은 슬픔을 고뇌하며 '참 마음을 잃지 않겠다'는 결연한 마음이 담겨있다.

    선생을 뵈옵는 마음으로 머리 숙여 묵념했다.

    현충탑 뒷길을 걸어서 향교 담을 따라 아래로 내려 왔다.

    길 옆에 광주공원 비석군이 있다.


    이곳은 선정비와 함께 친일 인물 윤웅렬.이근호.홍난유 3인의 단죄문이 있다.

    선정비는 고을의 수령들의 업적을 칭송하고자 세워진 것으로 어려운 한자 비문은 읽을 수도 뜻을 헤아릴 수도 없어 통과하고 평소 나의 관심사인 의병과 관련된 한 분의 비석을 찾아 보았다.

    호남의병의 선각자 송천 양응정.

    그의 비석은 안쪽 후미진 곳에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의 후손 양승구 박사와의 인연으로 관심이 깊어진 의병의 역사, 결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된다.

    의병과 4.19와 5.18로 이어져 도도히 흐르는 광주의 정신.

    그 역사의 숨결을 우리는 계승해야 한다.

    이 비석군은 광주광역시 곳곳에 흩어져 존재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조성했다.

    광주광역시는 지난 2019년 3.1독립운동 100주기를 맞아 친일 인물 3인의 비석을 뽑아 눕히고 단죄문을 설치했다.

    단죄문의 내용을  우리 후손에게 알리고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는 계기가 되도록 이곳을 현장 학습장으로 널리 이용되길 바란다.

    가을비 내리는 인적 없는 쓸쓸한 광주공원을 둘러 보면서 잔혹했던 일제 강점기의 아픔과 한국전쟁의 쓰라림과 체류탄의 매케한 연기가 자욱했던 옛 시민회관 앞을 영화 속의 장면처럼 되돌려 봤다.


    역사기행이 별건가.

    암울했던 시대, 우리의 한 맺친 절규의 숨결이 공존하는 이곳 광주공원에서  블랙투어리즘의 깊은 의미를 곱씹어 본다.

    블랙(Black)투어리즘 또는 그리프(Grief)투어리즘으로 불리우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

    휴양과 관광을 위한 일반 여행과 다르게 재난이나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가 체험함으로써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을 말한다.

    고약한 '코로나19' 속 가을 도심 여행, 광주공원을 강력히 추천한다.



  • 글쓴날 : [20-10-05 09:51]
    • 데일리호남 기자[truth11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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