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뿌리내릴 한줌 흙도 없는
바위틈새에서 외잎파리 자리잡고
모진 태풍 '마이삭'을 버텨내며
환한 꽃을 약속하는 다육이
줄기가 고사직전이지만
넝쿨손 더듬이를 본능적으로 뻗어내며
태풍 '하이선'과 맞서면서
꽃 몽오리를 내밀고
열매를 꿈꾸는 호박
생존을 위한 몸부림인가
종족 보존 본능인가
어떻던지 살아 남아야 한다
살아 남아야 번식한다
온몸을 긁어내는 태풍이든
줄기와 잎을 때리는 폭우든
뿌리를 흔드는 홍수든 간에
끝까지 버텨 살아야 한다
밤새 지친 냥이 얼룩콩도
잠자는 버섯종균목 위를
아슬아슬 곡예걸음으로
생쥐 숨소리를 눈치챘나
날카로운 눈초리가 매섭다
'코로나19'야 댐벼봐라
우리가 쉽싸리 질쏘냐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고
익숙한 구호마저 바꿨다
백로(白露)날 가을아침
우수수 나뒹구는 봉지 속 과실은
탐진 얼굴 군침 단맛
못드려 아쉬워 하지만
백로 비 십리천석 늘리고
백로 바람 풍년 약속한다니
위력 약해진 '하이선' 비와 바람에
풍년 추석 기약이나 해볼까
20907 제주 明月里民 학시니생각
(글쓴 이/김학신-순천출신으로 서울시립대를 졸업했다. 한국마사회 기획조정실장, 서울본부장, 렛츠런 재단 사무총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현재 제주시 한림읍 태양농장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