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칼럼) '싸목싸목 지구별 여행-무등산 원효사'
  • 인경숙/여행작가
  • 무등산 장운봉 아래 기슭에서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었다.

    그 집에 오는 여행자 중에는 무등산 등산을 작정하고 오는 젊은이들이 있었는데, 처음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무등산 장운봉은 광주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렇게 알려진 등산 코스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집 앞에서 바로 시작되는 등산 코스를 그들은 무척 좋아했다.

    연신 뷰리플를 외치며 사진을 찍었고, 나를 포함해서 사진을 찍고 싶어했다.

    종종 그 청에 이끌려서 함께 사진을 찍었던 추억이 어제 일 만 같다.

    '코로나19'로 멈춰 버린 여행 덕분에 잠시 동네 산책에 맛들린 요즘,

    게스트를 배웅하던 그 길을 걸어 보려고 한다.

    익숙한 길을 한가로이 걷는 것은 매력적이다.

    예전에는 낯선 곳에서의 하룻 밤이나 생소한 지명을 들고 확인하며 걷는 것을 여행의 기본으로 알고 즐겼다.

    그 또한 설레임과 즉흥성에 흥분되는 묘미가 충분했기에.

    요즘은 멀리 가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집 근처를 동네 한바퀴 산책하 듯 너무나 뻔한 코스를 걷다 보니 여행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너무 익숙한 나머지 빠르게 목적지를 향해 걷지 않고 두리번 거리며 해찰 하는 버릇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시닯지 않을 지라도 나에게는 어느 새 새로운 취미가 됐다.


    익숙한 길을 천천히 걸으며 길가의 나무와 풀과 꽃들에게도 다정한 시선을 보낸다.

    나름대로의 자태를 자신있게 보여주는 식물들을 매우 가까이 보면 실로 경탄할 만 하다.

    아주 작은 꽃일 지라도 꽃잎과 받침과 꽃술이 정확히 있다.

    늠늠한 나무일 지라도 줄기 끝에는 여린 잎을 달고 있다.

    그 조화가 눈부시다.

    그 각각의 특성을 자기의 자리에서 생명의 신비와 가치를 제공한다.

    내가 배울 점이다.

    자기의 정체성을 가감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힐링이 되는 자연의 이치 그 가치가 숲에는 있다.

    여기로오세요, 내가 원하는 걸 줄게요...말하지 않아도 자연이 주는 깊은 휴식과 평화...그 정체성이 안심해도 되는 익숙한 길 위에 있다.

    여행을 못하게 됐다고 해서 우울할 필요가 없다.

    당장 문 앞에 나가서 익숙한 길을 싸목싸목 걸어 보자.

    또 다른 매력에 풍덩 빠질 것이다.




    가려던 길을 가지 못했다.

    이미 등산로가 폐쇄됐기 때문이다.

    차를 돌려서 청풍쉼터로 간다.

    가는 길에 무등산 전망대도 들러볼 것이다.

    '코로나19'로 발길이 끊긴 전망대는 굳게 잠겨있다.

    겨우 사진 한장을 찍어서 왔음을 인증한다.

    청풍쉼터는 전광판 안내로 입산금지를 알린다.

    오는 날이 장날 같다.

    하지만 여행에서의 변수는 항상 돌발적이고 그 때마다 최선책을 찾아내는 것 또한 길 떠난자의 몫이려니 여긴다.

    어차피 예상했던 바이기도 했다.

    '코로나19' 모든 게 편치 않은 시국에 무등산을 무방비로 열어 놓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선택은 산장 입구 주차장에서 원효사로 가는 코스다.




    무등산 원효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 말사다.

    원효봉을 뒤로 하고 원효계곡을 아래로, 무등산 정상 서석대를 바라보는 수려한 경치를 지니고 있다.

    원효대사는 661년(문무왕 1년) 의상스님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길에 어느 날 한 무덤가에서 잠이 들었다.

    잠결에 목이 말라 달게 마신 물이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 다시 보니 해골바가지에 담긴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 급히 토하다가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달아 유학을 포기한다.


    이 깨달음을 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대중불교를 위해 노력하던 원효대사는 6세기 초에서 중반 무렵인 신라의 지증왕, 법흥왕 때, 산자수려함을 사랑해 이곳에 머무르면서 수행하셨다고 한다.

    이에 암자를 개축한 후 원효사·원효암·원효당 등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무등산 원효사에서 서석대에 이르는 옛길2 구간의 멋진 등산코스가 있으나 내 개인 취향은 등산 보다는 입산을 즐기는 편이다.

    또 입산을 통제한다는 정부시책에 적극 참여하는 시민의식으로 옛길2 구간 등산은 포기한다.

    왕복 약 4시간(편도 약 2시간)을 포기하고 얻은 꿀맛 같은 시간을 원효사 근처 숲에서 보낸다.

    며칠 전 전화 통화에서 나눴던 버섯의 향기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달콤한 플로랄 계열이나 코코계통의 향수를 좋아한다.

    숲에서 나는 은은한 버섯의 향이 대체 뭘까.

    오늘은 여름의 끝자락이며 가을의 가장자리인 8월의 마지막 일요일이다.

    숲은 말 없이 계절을 알려준다.

    이 계절 숲은 버섯의 계절이다.

    얼마 전 충분히 내린 비 덕분에 소나무 밑둥 옆, 키 작은 대나무 아래는 버섯들의 안방이다.

    조심스레 버섯 한개를 들어 코에 대 본다.

    비와 흙과 식물의 줄기에서 나는 수액 내음과 습기를 머금은 바람의 냄새까지 포함한 싱그러운 냄새가 난다.

    향기라고 하기에는 개성이 없다.

    굳이 향기로 치자면 남성 용 향수에서 스치는 우디 계열의 느낌 비슷하다.

    그늘진 바위에 붙은  이끼에서 느낄 수 있는  숲의 향기라고나 할까.

    요리할 때 쓰는 표고나 송이. 느타리처럼 강한 향기는 아니지만 은은하면서도 숲을 닮은 냄새가 버섯향인가 생각한다.

    아무튼 조향으로 만들어진 세련된 아트피셜한 향기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아마도 자연의 향기, 그대로의 내음이 버섯의 향 인가 싶다.

    '코로나19'로 등산을 포기하고 원효사 계곡에서 충분한 휴식을 얻고 내려간다.

    거창한 여행이나 이름난 둘레길 걷기가 아니어도 좋다.

    싸목싸목 집 근처 동네 산책에 나서볼 것을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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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날 : [20-08-31 11:12]
    • 데일리호남 기자[truth11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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