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피해로 상처난 마음을 위로하고 일손을 보태서 비 설겆이 끝냈다.
어쨌든 용기를 내야 한다.
이 말이 아무 소용 없음을 알지만, 웬지 그 말 끝에는 희망의 끈이 붙어 있을 듯해서 겨우 입 밖으로 내어 보았다.
그러마고 하는 그의 목소리는 축쳐져 있었다.
지루하고 험악했던 장마는 끝났다.
우리가 감당할 만한 작업도 대부분 마쳤다.
이제부터는 차근차근 복구에 전념하며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일이다.
무겁고 답답한 채로 바다로 간다.
정확히 말하면 섬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연육교로 이어져 있어서 육지와 다를 바 없는 섬을 향해서 간다.
전남 고흥 나로도가 목적지다.
화순.보성.벌교를 지나는 길가의 풍경은 한여름이다.
이 지역은 다행이 수해의 흔적이 없다.
평온한 농촌 들녁에는 벌써 고개 숙인 벼 이삭들이 충실하고 튼튼해 보인다.
알알이 영글어 풍성한 가을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휴가철 연휴라고 하지만 도로는 한산하다.
정부는 연일 집합 자제를 방송하지만 한편으로는 소비를 장려하니 어느장단에 춤을 춰야할 지 난감한 현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현명해서 안전을 중요시하고 모든 건 그 다음으로 미루면서 위축된 생활을 택했다.
호캉스니, 홈캉스니, 집콕이니, 스테이케이션이니 떠들어도 우리는 바다로 간다.
작은 해변에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그리고 드넓은 바다는 숨통이 트이니까 말이다.
푸른 바다 저 멀리 뭉게 구름이 피어 오르는 그 곳으로 간다.
하늘높이 하늘높이 마음도 피어 올라 가벼워지길 바라면서...
고흥 나로도다.
나로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섬으로,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로 이루어져 있다.
기암괴석과 깨끗한 바다, 소나무숲, 유자나무, 계단식 논밭과 사철 따뜻한 날씨 등이 섬의 특징이다.
고흥읍에서 25km 떨어진 해상에 있어 교통 사정이 좋지 않았으나, 1994년 고흥군과 내나로도를 잇는 나로대교가 놓이고 이듬해에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를 잇는 나로2대교가 놓이면서 교통이 편리해졌다.
섬 전체가 관광지라고 할 만큼 곳곳에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나로도·발포·덕흥·남열·대전·염포 등 수심이 얕은 해수욕장이 많다.
이들 해수욕장에서는 간조 때면 백사장에서 조개를 주을 수도 있다.
주변 바다에는 어족이 풍부해서 일년내내 낚시꾼들로 붐빈다.
우리 일행은 빈틈 없는 계획을 세웠다.
2박3일 일정에 맞춰서 첫째날은 수락도 해변에서 해수욕을, 둘째날은 유람선 관광을, 셋째날은 편백숲 트레킹,나로호 발사대,오후에는 소록도 섬까지, 그야말로 낭만적인 코스와 건강을 고려하면서도 지리적인 특징을 두루 살펴 볼수 있는 멋진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낭만에 초를 둠뿍 찍어 먹고야 말았다.
언제나 예기치 않는 상황에서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여행자의 덕목이라 주장해 온 필자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기에 오히려 내 그럴줄 알았다 싶었다.
대략난감하기는 후속 조치가 전무한 가운데 오로지 횟감과 밀린대화에 집중한 가운데 우리의 당초 계획은 박살 나 버렸다.
계획은 멋졌으나 현실은 언제나 어긋난다.
이 또한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즉흥적인 즐거움인 동시에 느슨해도 되는 여유다.
우리의 계획은 충분히 멋졌다.
잔물결이 이는 앞 바다에 노을이 빛나고 있다.
그 앞에 둘러 앉아서 거북손과 꽃게망탱이와 덕자회와 모듬회를 펼쳐 놓고 일잔을 기우리는 일행의 얼굴도 바닷물처럼 붉게 물들어 간다.
일상과 여행, 삶의 다양한 순간을 즐기고 싶다면
고흥 나로도가 최적이다.
서럽고 힘든 일이 있다면 당장 고흥 나로도 해변으로 오라.
내 가슴에 손을 언고 괜찮아 괜찮아 다 잘될거야...주문을 외어보자.
참 빨리도 흐르는 세월 속에서 질주하느라 애쓴 당신은 평화를 실감할 것이다.
비로소 내 앞에 놓인 어긋난 계획들에 대해 관대해지고 어쨌든 견뎌보자...
자신에게 손 내미는 또 다른 당신을 만날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내 맘대로 풀리지 않는다 해도 이 또한 지나간다.
수해지역 모든 분들께 고흥 나로도 해변의 시원한 바람을 마음으로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