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칼럼) '싸목싸목 지구별 여행' / 백운산 옥룡계곡
  • 인경숙/여행작가
  • 땅만 보고 숨차게 걷는 것 보다는

    그냥 나무를 바라 봄.

    숲 속에 가만히 서 있음.

    말하자면 등산 보다는 입산을 즐기는 편이다.

    이유는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

    그것 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험한 트레킹을 통해 찾는 성취감 보다는 자연과 함께 숨쉬는 이 순간 비록 소박하지만 잘 흘러가고 있음에

    더할 나위 없이 안심되는 느낌이 만족스럽다.

    산과 숲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숲만 보지말고 나무를 보라거니,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는 게 중요하다거니 하는 말이 있다.

    모두 좋은 관점이나 너무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 조차를 버리고 그냥 산에 간다.

    그 숲 속에서 서 있는다.

    나무향기 품은 공기를 흠뻑 마신다.

    지긋이 눈을 감고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를 들어 본다.

    잠시 그대로 걷지 않고 두리번 거리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다.

    마치 입산 의식처럼 산에 가면 위와 같이 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로 샤워한 느낌이 든다.

    차츰차츰 자연스레 산과 숲이 사람에게 주는 깊은 위로를 몸과 마음으로 알아차리게 되었다.

     

    비가 개인 날 아침,

    광양 백운산을 향해서 달려간다.

    전남의 작은 알프스라 불리울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 설레인다.

    섬진강 휴게소에서 일행과 커피를 한 잔할까 했지만 백운산으로 향하는 마음이 더 커서 그냥 지나쳤다.

    산허리를 휘감은 흰구름이 한폭의 동양화 인냥 우리를 반겼다.

    넓은 개울에 흐르는 물소리는 세상 시원하다.

    자동차의 속력을 늦추고 창문을 열어 얼굴에 스치는 바람을 맞는다.

    기가 막힌다.

    누가 말한 표현인가.

    바람이나 쐬러가자는 말... 딱 맞는 표현이다.

    바람을 쐬면서 산에 가는 기분이 최고이다.

    방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백운산 입구에서 멈춰야했다.

    '코로나19'로 입산이 금지 됐다는 안내에 따라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마침 배도 고프고 해서 점심을 먹으면서 오늘의 일정을 수정하기로 한다.

    하지만 식당들의 사정도 입산금지에 따라 대부분 문을 닫았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실망스러웠지만 사전 점검에 소홀했던 내 탓으로 돌리며 어이를 상실했다.

    해외여행이었다면 시시콜콜 확인했을텐데...가까운 백운산이라 방심을 했다.

    모처럼의 산행에  마냥 좋았던 기분 탓에 낭패을 당한 것이다.

    여행에 앞서 언제나 중요한 것은 사전점검이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말로 헛웃음을 치면서 실수를 눙쳐본다.

    그렇지만 개운치 못한 마음을 떨칠 수 없어서 일행에게 미안했다.

    점심 먹을 곳을 찾아 헤매다가 발견한 광양 백운산 옥룡계곡.

    처음부터 옥룡계곡을 목적지 삼아 왔어도 좋을 만큼 좋다.

    '코로나19'가 맺어준 인연의 계곡으로 마음에 품었다.

    숲도 아름답지만 계곡을 소용돌이 치며 흘러 내려가는 힘찬 물줄기는 조금 전까지 실망스러웠던 기분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천둥치듯 흘러가는 물줄기에 거대한 바위가 뽑혀 나갈 기세다.

    시원하다 못해 후련했다.

    옥룡계곡 정상까지 등산 하고픈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이 숲 어느 곳에서 이토록 세찬 물줄기가 뿜어 나오는 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절제했다.

    숲이 전해주는 역동적인 느낌 만을 내 것으로 취하는 게 마땅하겠다는 마음이 작용했다.

    자연이 내어주는 감동만을 오늘의 선물이라 여기면서 쏜살 같이 흘러가는 물줄기에 내마음을 실어 보냈다.

    어제 내린 비에 씻긴 맑은 숲은 그 자체로 빛이 났다.

    숲의 초록빛이 계곡 물에 녹아 내리는 듯 보인다.

    바닷물이 코발트빛으로  멋지다면, 옥룡계곡의 물은 수정빛으로 맑고 투명하기만 하다.

    옥룡계곡에 넋을 빼앗긴 내 마음은 봄날의 벚꽃길을 걷는 기분처럼 화창해졌다.

    우리의 인생도 목적과 다르게 흘러간다 하더라도 당초의 계획보다 더 좋은 곳에 당도하면 좋겠다.

    우리가 오늘 옥룡계곡에 도착한 것 처럼...

     

  • 글쓴날 : [20-08-03 12:08]
    • 데일리호남 기자[truth11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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