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점식(가운데) 순천부시장이 순천시 직원들과 함께 정원박람회장을 둘러보고 있다. (순천시 제공)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이겨낸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시인 이형기의 ‘낙화’ 중에서>
………
생각해 보면, 힘들었던 순간 동료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앞만 보며 힘차게 달려왔다. 40년 공직(公職)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순간에도 눈앞에 일(業)이 보인다.
‘인생여초로(人生如草露)’
인생은 풀잎 위의 이슬 같아서 쏜 화살처럼 지나간 것 같기도 하다. 책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기만 한 기억들. 아차했던 순간도, 아쉬운 순간도, 보람차고 벅찼던 순간도, 그리운 사람도, 봄날 아지랑이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 공직의 첫발…찬란한 청춘
깡촌 영암에서 태어나 처음 가본 광주는 두려움 반 설래임 반이었다. 금호고등학교에서 품은 청운(靑雲)의 꿈은 공직으로 향했다. 고향 영암에서의 첫 출근은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순간 순간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 전남도청으로 자리를 옮긴 건 새로운 꿈을 품은 숨은 계획이 있었다. 또 서울로 향해 국회사무처에서의 공직도 인생에서 큰 결정으로 남는다.
전남도의 재정을 관리하고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해소하던 일. 공직생활 35년 만에 다시 고향 영암에서 행정의 수장(首長)을 맡았던 일. 그 뜨겁고 아름다웠던 청춘의 찰나는 청년 손점식을 행정의 어머니로 만들었다.
공직의 마지막이 순천(順天)이다. 하늘이 순하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지만, 손점식 부시장과 닮았다. 외형은 부드럽지만 속으로 강한,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이라는 점이 닮았다.
또 작지만 강한 점도 닮았다. 중소 도시 순천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 이름을 알린 정원박람회를 성공시킨 점과 순천시청 행정의 수장을 맡아 직원들을 슬기롭게 통솔해 정원박람회 성공의 자양분을 만든 점이 닮았다.
◇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저는 우리 부시장님의 따뜻한 리더십이 너무 좋아요. 직접 근무한 적은 처음이지만, 결재하러 찾아가면 너무 일하기 편하게 잘 대해주셔서 많이 배웠어요.”
“일. 일. 일. 마지막까지 일만 하고 가시네요. 하루도 안 쉬시고 끝까지 순천시를 위해서 또 직원들의 대소사까지 꼼꼼히 챙기시면서 일만하고 가시네요. 많이 배우고 느꼈습니다.”
“직원들이 정말 일하기 편하게 해 주신 분이다. 일에 대한 방향을 정확하게 결정해 주시니까 일을 하기가 정말 편했다. 정말 훌륭한 덕장(德將)의 면모를 갖추신 분이다.”
“9급에서 공직을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르기가 쉽지않는데 대단하신 분이다. 우리 직원들에게는 모범답안 같은 입지전적인 분이다. 이번 이임식에서도 꽃다발도 하지마라고 할 정도로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조약돌같은 분이다. 정말 존경한다.”
손점식 순천부시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선배로 간직하고픈 인물이라는 게 중론이다.
쓸쓸하지 않다. 인생 2막을 준비하기에 오히려 새로운 출발이다. 후배들에게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기고 떠나기에 그의 뒷모습이 아름답다.